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한류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 익히 들었다. 미국 가정집 거실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영화를 보고, 지구 반대편 케냐 젊은이는 아침 출근길에 한국 아이돌 노래로 아침을 깨운다. 세계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한국 영화,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한국 노래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한류는 이곳 아프리카에서도 큰 영향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 드라마, 노래를 좋아하는 케냐 젊은 친구들이 상당히 많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를 통해 웬만한 한국 드라마는 봐왔고, 한국 아이돌 그룹의 최신 노래도 줄줄이 알고 있다. 가끔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어서 놀라고 때도 있다. 대게 10~20대의 젊은 친구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이 젊은이들은 한국 영화, 드라마, 노래를 보며 한국 사람들의 생활상을 간접 체험한다. 한국인들이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옷을 입는지, 어떻게 여가 시간을 보내는지 우리의 일상생활을 꿰뚫어 보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연애 문화, 결혼 문화, 가족 문화, 삶의 희로애락에 대해서 이들은 잘 알고 있다. 단순히 자국 문화와의 차이에 호기심을 가지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에, 한국 문화를 동경하여 따라 하려는 이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간편하게 한 끼 때울 때 먹는 떡볶이와 김밥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는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되었다.
나이로비에 우리 회사 지사 건물 1층에는 커피집이 있다. 나는 아침마다 이곳에서 커피를 사서 사무실로 올라간다. 이곳 직원은 어느 날 나에게 내가 한국인이 맞는지 물었다. 보통 케냐에서 황인은 다 중국인이라 생각한다. 한국인이라 알아본 것이 신기해서 나는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그 직원은 나의 옷차림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 직원은 나의 행동과 모습에 관심이 참 많았다. 내가 결제를 위해 카드를 건넬 때 두 손으로 건네는 점을 보고 한국 드라마 속 모습과 같아 신기하다고 하고, 한국인들은 다 피부가 좋아 보인다며 어떤 화장품을 바르는지도 매일 물어봤다.
한번은 현지 고객사와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다. 케냐 음식인 구운 고기 냐마초마 집에 갔는데 맥주를 곁들여 먹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에 밴 대로 술을 마실 때 고개를 살짝 꺾어서 마셨는데, 이 모습을 본 고객사 사람이 "한국인은 정말 술을 마실 때 고개를 돌리는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에게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어린 딸이 있어 한국 드라마를 자주 봐왔다고 한다.
현지 마트에 들어오는 한국 라면은 이곳 젊은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싸고 손쉬운 한식이다. 젊은이들은 마트에서 '불닭 볶음면'을 사서 먹으며 인증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한다. 이곳에 있는 한식당도 현지인 손님이 많이 보인다. 중식당에 가보면 중국인이 대다수인 점에 비하면 한식에 대한 현지인들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중식당과 일식당에 비해 한식당 숫자는 적지만, 현지인들의 관심도는 더 큰 것 같다. 이 뿐만 아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와 식당에서도 종종 한국 음식, 한국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선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의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국 소프트파워(Soft power)의 발전사를 보면, '한류'로 불리는 한국 문화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민간들이었다. 정부의 역할은 민간인들이 한류의 확산과 발전, 진출을 수월하게 하도록 도와줄 뿐이다. 한국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는 기획사들, 방송사들, 연예계 종사자들, 이런 콘텐츠를 소비하고 긍정적 피드백을 주어 발전시켜 온 국민들 모두의 합작품이다.
현대 사회에서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이 없다. 소프트파워의 개념은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석좌교수가 처음 제시했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 혹은 경제력으로 대변되는 하드파워(Hard power)의 반대 개념으로, “강제나 보상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을 의미한다. 한류는 우리나라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만하지 말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한류가 큰 히트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미국 할리우드를 비롯한 서양 문화 콘텐츠가 케냐에서 절대적 주류로 잡고 있다. 아직 한국 콘텐츠의 주 소비층은 10~20대의 젊은 층이다. 아직도 이들보다 앞선 세대들에게 한국 콘텐츠는 낯선 동양의 것이다. 물론 이 10~20대가 성장하여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사회 주류가 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래 보인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곳 케냐에서 한국 콘텐츠 주 소비 계층이다. 이들이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수단은 스마트폰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들은 주로 OTT 서비스와 동영상 공유 서비스를 통해 한국 콘텐츠를 접한다. 문제는 케냐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유한다는 것 자체도 큰 부담이지만, 인터넷 데이터를 구매하여 동영상을 본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아무 곳에서나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콘텐츠는 모든 계층에 골고루 퍼지지 못하고 중산층 이상에서만 퍼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다른 선진국과는 다른 상황이다.
한류가 모든 연령대, 계층에 퍼지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주 소비층이 10~20대이기에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사회 주류가 된 이후의 모습이 기대된다.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접속 환경은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고, 한국 콘텐츠가 확산될 환경도 더 좋아질 것이다.
외국인이 우리의 문화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참 좋다. 우리는 이렇다 하고 굳이 설명해 줄 필요가 없다. Do you know라고 시작하며, "Do you know Kimchi?" "Do you know Taekwondo?"와 같이 한국 문화를 이해시켜 줄 필요도 없다. 내가 평소에 입는 옷, 먹는 음식, 행동 모두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세련되고 멋진 사람들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런 관심은 결국 한국 제품 소비로 이어지고, 이는 우리 기업과 경제에도 득이 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직 이곳 케냐에서 할리우드를 비롯한 서양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카페, 클럽,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도 미국과 영국의 것이 대부분이다. 10년, 20년 후에 케냐에 다시 와서 라디오를 틀었을 때 들려오는 노래가 한국 노래였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