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문가 파견) 북아프리카

내가 사랑하는 마아디

Oh Ali 2023. 5. 28. 06:26

어쩌면 짝사랑일지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마아디는 내게 늘 좋은 기억만을 주지는 않았다. 낯선 공기,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 이방인으로 살면서 마아디는 늘 내게 따사롭지는 않았다. 때로는 낯설고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아디에 정이 간다.

마아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8년이다. 그 해 여름 나는 카이로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 출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턴 근무지 근처에 집을 구해야 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들을 나름 추려보니 3곳으로 추려졌다. 이 중에 마아디를 선택하게 된 것은 의도 된 일이 아니다. 당시에 어떤 분이 마아디에 같이 살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별로 따져보지 않고 그곳에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뿌연 잿빛 모래 먼지가 부는 카이로에 도착하여 짐을 풀기 위해 마아디로 향했다. 창문 너머에 보이는 처음 보는 풍경, 건조하고 더운 공기, 처음 맡는 기사 아저씨의 향수 냄새가 나의 감각들을 일깨웠다. 어느덧 도로를 달려 마아디에 들어서니 공항에 내려서 본 풍경들과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마아디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길 양쪽에 푸른 가로수들과 아랍적인 모습과 유럽 소도시의 모습이 오묘하게 섞인 건물과 길거리는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마아디의 첫 인상은 이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8년 마아디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광활한 사막에 펼쳐져 있다. 카이로 도시 광역권의 인구는 대략 2천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2천만 명이 사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 마아디는 인구 9만 명이 사는 도심 외곽의 한 구역에 불과하다. 이곳은 이집트인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나일강변에 위치한 비옥한 땅이다. 마아디에는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마아디의 현대 역사는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된다. 20세기 초반 영국인들은 이집트 식민 지배를 위해 수도를 관통하는 철도를 건설하게 되고, 마아디는 이 철도 건설 과정에서 많은 영국인들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아디는 처음부터 서양인들에 의해 계획된 도시였다. 그들은 마아디의 도로망을 건설하고, 각 건물들이 갖추어야 하는 녹지와 건축 규정에 대해서도 설정하였다. 이렇게 건설된 마아디의 도로망과 녹지는 한 세기가 지나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내려오고 있다. 이후 이 곳에는 영국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등이 이주해 살게 되었고, 이들이 가지고 온 외지의 문화는 현지의 문화와 융합되어 마이디를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동네로 발전시켰다. 도로 곳곳에 있는 회전교차로는 이 곳이 서양인들에 의해 계획된 도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마아디에는 녹지가 많다. 거목들이 가로수로 놓여있고, 도로 중간 중간에도 녹지가 조성되어 있다. 건물들 사이에는 녹지가 일정 부분 있어 이곳에 테라스를 두고 영업하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다. 해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이탈리아인이 운영하는 피제리아, 레바논인이 운영하는 레바논 식당 등 세계 각지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곳곳에 녹지가 있는 마아디

이 도시의 활기는 해가 지고 밤에 볼 수 있다. 이집트는 사막성 기후로 낮에는 해가 매우 뜨겁고 돌아다니기가 힘들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해가 지고 저녁때쯤부터 활기를 보인다. 해가 사막을 넘어 이곳에 어둠이 찾아오면 마아디의 대로변은 축제의 장과 같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들 앞에서 젊은이들은 어울리고 있고, 커플들은 야외 테라스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대부분의 가게는 자정까지는 영업하는 것 같다.

밤 늦게까지 불을 키고 있는 가게들

내가 이 동네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책방이다. 마아디에는 곳곳에 책방이 많다. 내가 자주 들리는 책방은 야외에 테라스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주말에 책 한 권 사서 커피 한잔하며 시간을 보내기 정말 좋다. 아랍어를 공부한 나로서는 아랍어 서적들이 가득 진열된 이곳의 책방 구경은 마치 보물찾기와 같다. 눈을 크게 뜨고 잘 보다 보면 보물과 같이 소중한 책들을 발견하곤 한다. 한국으로 다 들고 오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한 권 두 권씩 모으고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책방 Diwan

해가 지고 밤에 길거리를 걸으면 랜턴과 장식품 가게가 눈길을 끈다. 화려하게 장식된 랜턴들은 환하게 켜져 이곳에 온 낯선 이방인을 반긴다. 화려한 랜턴 빛에 홀려 가게 안을 들어가 보면 이슬람 전통 문양으로 된 장식품, 카펫, 액세서리가 진열되어 있다. 카이로를 떠나기 전 사 가고 싶은 장식품을 눈에 담아오는 재미가 있다.

화려한 장식품 가게들

20세기 후반부터 마아디에는 아시아인들도 터를 많이 잡고 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중식당, 한식당, 일식당을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듣는 중국어로 된 가게가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안 파는 중국 음식이 없다. 나를 포함한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들은 고향의 음식을 파는 식당에 가서 향수를 달래곤 한다.

마아디에 사는 또 다른 재미는 건물 안에 숨어있는 가게들이다. 이곳의 건물들은 한국처럼 크게 간판을 두고 영업하지 않는다. 물론 1층에 매장을 둔 가게들은 간판을 두지만, 1층이 아닌 곳에서 영업하는 가게들은 간판을 크게 두지 않아 좀처럼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 내가 다니는 요가 센터, 아랍어 학원, 악기 학원 모두 처음에는 찾기가 힘들었다. 얼마 전 등록한 요가 센터는 정말 찾기 힘들었다. 미국인 선생님이 운영하는 센터인데, 건물 1층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 외관은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모습이나, 건물 실내는 수리하여 제법 그럴싸하다. 이런 숨은 장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나일강이 내다보이는 마아디 카페에서 쓰고 있다. 해 질 녘 나일강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한강과 같이 넓은 수량의 강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이 발현한 곳인 이 땅에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남다르다. 기원전, 이 땅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지금 내 왼편에 흐르고 있는 나일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