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85% 이상이 기독교인 케냐에서는 4월 초 부활절(Easter holiday)은 연중 두 번째로 큰 명절이다. 많은 이들은 이 기간에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을 만나거나 여행을 간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다들 자연스럽게 연휴 기간 무엇을 할지를 묻는다. 케냐에 온 지 몇 주가 안 된 나도 이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였고, 많은 이들이 이 기간에 나이로비를 떠나 사파리 여행을 갈 것을 추천했다. 나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나는 여행에 있어 숙식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구경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케냐에는 사파리 투어를 제공하는 업체가 매우 많다. 당장 구글에 검색만 해보아도 백 개 정도는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위 검색에 나오는 몇 개 업체를 통해 마사이마라(Masai Mara) 사파리 견적을 받았다. 2박3일 일정으로 500달러부터 1,200달러까지 가격대가 다양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한국 아프리카 배낭여행 정보 커뮤니티에서 한국인들에게 좋은 가격으로 투어를 제공한다는 현지 여행사를 소개받았다. 바로 연락을 했고, 2박 3일에 교통, 숙식, 국립공원 입장료 모두 포함하여 250달러에 해준다고 했다. 이게 웬걸? 기존에 받았던 견적보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나는 흥분한 채로 바로 투어 예약을 했다. 한국인 배낭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해본 여행사라기에 묻고 따지지도 않고 선택했다.
부활절 연휴 첫날인 7일 아침 7시, 여행사에서 내 숙소까지 픽업을 와주셨다. 전날 회식이 있어서 술이 아직 덜 깬 상태로 봉고차에 올라탔다. 부활절 연휴 2박3일 투어에는 총 18명이 함께 했다. 봉고차 3대에 각 6명씩 나누어 타고 나이로비에서 출발하여 마사이마라로 향했다. 내가 탔던 차에는 나를 제외하고 인도인 가족 5명이 함께했다.
나이로비에서 마사이마라까지는 교통 체증이 없으면 6시간이 걸린다. 마사이마라까지 가는 길에 Great rift valley view point라는 대계곡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잠깐 멈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사이마라 사파리 가는 길에 필수코스라고 한다. 이때까지 나는 술이 덜 깬 상태였다. 술이 덜 깼음에도 불구하고 광활하고 멋진 대자연의 모습은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흘러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오후 2시쯤이 도착했던 거 같은데, 그때가 돼서야 술에서 다 깬 기분이었다. 나중에 듣기로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인도인 가족들이 내가 인기척도 없이 잠만 자길래 죽은 거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차 안에 토하지 않고 잠만 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가는 길에 중간에 휴게소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이로비에서 마사이마라로 가는 많은 일행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것 같았다. 음식은 현지식 뷔페로 나왔다. 한 백 명은 그곳에서 식사하고 있었는데 동양인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대부분 서양인과 케냐 현지인들이었다. 사실 먹을만한 음식은 없었다. 그래도 저렴한 투어 패키지에 이 정도는 감안하고 왔으니 로컬 체험이거니 하고 맛있게 먹었다.
국립공원 입장을 위해 신분증과 여권을 검사하고 차 안에서 기다렸다. 외국인의 입장권은 70 USD라고 하나, 나는 투어 비용에 입장권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어서 따로 지불하지 않았다. 국립공원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수많은 차 사이로 기념품을 팔려는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조금 열어둔 창문 사이로 주렁주렁 기념품을 내밀며 호객행위를 했다. 1시간을 기다려 우리는 국립공원에 입장했다.
운전자분께서 루프탑을 열어젖혀서 서서 구경할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 운전자분 성함은 James였는데 20살 때부터 30년간 마사이마라 사파리 가이드를 했다고 한다. James는 우리 차의 운전자이자 가이드였다.
차 안에 서서 보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상낙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에 야생동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운 좋게 우리가 간 날에 날씨도 정말 맑고 쾌청했다. 달리는 차에서 서서 상쾌에 바람을 맞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이때의 그 상쾌한 기분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수십 킬로미터 너머로 보이는 초원을 보며 달리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 사실 마사이마라 사파리 가기 전에는 동물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 산도 생각해보면 야생동물이 있기는 하나 그렇게 많지는 않지 않은가?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왼쪽에 얼룩말이 있어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면 기린이 있다. 그러다가 조금 더 가서 옆을 보면 코끼리가 보인다. 정말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케냐에서는 사파리에 가서 꼭 봐야 하는 야생동물 5개를 묶어서 'Big five'라고 부른다. 이 야생동물은 모두 위험한 동물이라고 한다.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물소(버펄로)가 바로 그 다섯 동물이다. James는 우리에게 다섯 동물 모두를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신신당부했다.
인도인 가족은 참 정이 많다. 배고플 틈이 없게 계속 가지고 온 간식을 주고 사진도 찍어준다. 한 가지 조금 불편했던 점이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차 안에서 인도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과 야생동물을 보면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핸드폰을 들이민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 덕분에 2박3일 심심할 틈 없게 보냈다.
첫날에는 얼룩말과 코끼리를 많이 보았던 것 같다. 동물 중에 얼룩말은 정말 많았다. 우리의 가이드 James 말로는 얼룩말 개체수가 지금까지 많은 이유가 얼룩말이 성질이 안 좋아 사육하기도 어렵고 고기가 맛이 없으며 가죽도 질이 형편없어서라고 한다.
날이 저물어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밖에 있는 마을에 위치한 롯지 캠프였다. 사실 오기 전에 롯지 캠프라기에 많이 기대했다. 모닥불을 피고 캠프파이어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숙소를 처음 본 나는 충격적이었다. 2인에서 텐트 하나를 공유하는데, 나는 인도인 아저씨와 함께 썼다.
캠프에는 하루에 전기가 4시간씩 아침저녁에 두 번 들어온다고 했다. 와이파이는 하루에 한 번 저녁에 4시간 들어왔는데, 접속해도 사용 불가한 와이파이였다. 다행히 모바일 데이터는 느리지만 터지기는 터졌다. 롯지 안에는 침대가 3개씩 있었고, 모기장이 처져 있었다. 침대에 모포가 깔려 있는데 군대 생각이 났다. 화장실에 샤워 시설도 있는데 찬물만 나왔다. 군대 생각이 났다. 그마저도 군대에서는 깨끗한 물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종종 붉은빛이 도는 흙물이 나왔다.
내가 실망한 표정을 보이니 같이 있던 인도인 아주머니가 원래 이런 것이 original safari(진짜 사파리)고 따뜻한 호텔에서 묵으며 사파리 하는 애들은 fake safari(가짜 사파리)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맞는 말 아니겠는가? 언제 이렇게 자연 친화적인 체험하겠는가? 250불 주고, 입장료 70불 제하면 180불 남는데, 길바닥에서 안 재우고 이 정도면 훌륭한 숙소가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나는 서둘러 짐을 풀었다. 개인 독실을 쓰고 싶었으나, 내가 간 시기가 케냐 명절 기간이라 손님이 많아서 독실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독실은 못 썼지만 이마저도 다행이 아니겠는가? 혹여나 밤에 사자나 치타라도 나타나서 쥐도 새도 모르게 물려갈 수도 있는데 누군가와 함께 있으니 말이다. 캠프 직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친절했다. 그들은 캠프 이곳저곳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저녁 식사는 뷔페식으로 나왔다. 주방을 살짝 봤는데 매우 비위생적이어서 그다지 먹고 싶은 생각은 나지 않았지만, 여기에서는 먹을 것이 이것밖에 없으니 먹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위생에 대한 부분은 아프리카 땅에 온 순간부터 어느 정도 스스로와 합의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런 거 신경 많이 사람이었으면 애당초에 오면 안 되었다. 250불 투어 패키지에 굶기지 않으면 진수성찬이지 하고 감사하게 먹었다.
밤이 되니 밤하늘에 별이 정말 많았다. 나이로비에서도 별이 많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더 많이 보였다. 9시가 넘으니 할 것이 없어 모두 다 자는 분위기였다. 나와 숙소를 함께 썼던 인도인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화학 업계에서 일하는 분이었다. 한국에서 화학 트레이딩을 담당했던 나로서는 이러저러할 말이 많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오전 7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따라서 6시에 모여서 같이 식사를 마치고 준비하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인도 가족분들이 내 밥 먹는 거도 매번 챙겨주셨다. 모기장을 치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 벌레를 물렸다. 그래도 말라리아약을 먹었으니 말라리아는 안 걸리는지 생각하고 약 발랐다.
사파리에서는 차를 타고 사파리 투어를 나가는 것을 'Game drive (게임 드라이브)'라고 부른다. 우리는 둘째 날 게임 드라이브를 위해 차에 올라탔다. 아침 해가 대초원에 뜨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있는 길 없는 길 가면서 동물들을 정말 많이 보았다. 둘째 날에는 사자, 영양, 물소, 기린을 보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외에도 정말 수많은 동물을 봤다. 동물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을 선에서 최대한 가까이 가서 지켜봤는데 정말 흥미로웠다.
새벽에 비가 내려서인지 이날은 길이 많이 젖어 웅덩이가 많이 있었다. 우리가 탔던 자동차는 거의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차인 것 같았는데, 엔진 출력이 약해서인지 중간중간에, 웅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는 안에 모두가 내려서 차를 밀어 웅덩이에서 빠져나왔다. 6명이 밀어도 소용이 없을 때는 James가 동료를 불러 다른 차에 연결해서 웅덩이에서 차를 끌고 나왔다.
한번은 개울가를 건너다가 차가 꼼짝달싹 못하고 30분을 있었던 적이 있었다. 주변이 다 웅덩이여서 차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웠는데, James가 다른 동료를 불러서 앞부분 흙을 파내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이때 차 안에 모두가 환호를 지르며 같이 기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차가 거의 반은 기울어져 있어서 개울가로 뒤집히는 거 아닌 거 초조하게 걱정했었다. 과연 호화 사파리로 왔다면 이런 짜릿한 전율과 환호를 느낄 수 있었겠는가?
점심은 캠프에서 포장해 준 것을 간단하게 밖에서 먹었다. 닭고기와 사과, 음료수 등이 있었는데, 맛있지는 않았지만, 대자연에서 동물들을 보며 닭고기를 뜯으니 기분이 남달랐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마라강(Mara river)을 배경으로 돗자리를 깔고 오순도순 먹었다. 피크닉 하는 기분이었다. 마라강에는 악어와 하마가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차에 다시 타고 시동을 걸고 출발하였는데, 우리가 식사한 장소에서 불과 2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표범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거 하마터면 아프리카까지 와서 표범 밥 되었겠는데 싶었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식사를 늦게 마쳤다면 정말로 풀숲에서 기어 나오는 표범과 마주쳤을지 모른다. 표범은 매우 늠름한 모습이었다.
두 번째 날의 게임 드라이브를 마치고 저녁이 돼서야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 식사를 하고 너무 피곤해서인지 바로 잠들었던 것 같다. 캠프 한편에는 모닥불을 피웠고 나름 분위기가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짐을 모두 챙기고 이틀이나마 정들었던 숙소와 작별 인사를 하고 마사이 마을로 향했다. 작별인사를 할 때가 되서야 보니 이 롯지 캠프도 나름 지낼 만하다고 생각했다. 흙물이 나오면야 기다렸다가 씻으면 되는 것이고, 화장실 물이 잘 안 내려고 가면 식당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쓰면 된다는 노하우도 생겼다. 사람은 역시 적응이 동물인가보다. 잠시나마 정들었던 숙소와 자동차가 나중에 보고 싶을 까봐 사진을 찍어두었다.
마사이족 마을은 롯지 캠프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입장료는 외국인은 1,000실링 (한국돈으로 대략 만원)이었다. 돈을 받고 나니 부족 남성들이 모두 모여 환영식을 해주었다. 환영식이 끝나고는 구경하는 사람들 손을 잡고 같이 뛰는 퍼포먼스를 했다. 만원에 이렇게까지 환대를 해주나 싶었다. 그들은 자기들 전통의 방식 그대로 외부 문명을 최소한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환영식이 끝나고는 관광객들을 데리고 마사이족 주민들이 실제로 사는 집 내부를 구경시켜 주었다. 마사이족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흙과 소똥으로 벽을 만들어 집을 짓고 산다고 한다. 집 내부는 매우 비좁았으나 필요한 생활용품은 다 있는 것 같았다. 집에서 나오려는데 사자 이빨로 만든 목거리를 사라고 권유했지만 거절하고 나왔다.
마사이 마을에는 소를 정말 많이 키우는 것 같았다. 형형색색의 소가 들판에서 방생되고 있었는데 정말로 거짓말 안 하고 걸음걸음마다 소똥이 보였다. 다행인 것은 소가 풀만 먹고 자라서 그런지 소똥의 냄새가 심하지는 않았다. 조심조심 땅만 보고 걸었는데 그런데도 소똥을 두 번이나 밟고 말았다.
마사이족 마을 구경이 끝나고 우리는 나이로비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나이로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을 지나가야 한다. James는 근처에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을 마지막으로 구경하자고 했다. 그곳에는 탄자니아 국경임을 보여주는 TZ가 적힌 비석이 있었다.
비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길, 나는 더 이상 이런 대자연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잠시라도 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때 보았던 푸르른 초원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이로비로 돌아오는 길, 인도인 가족들은 같이 힌두교 사원에 가서 점심을 먹지 않겠냐고 물었다. 인도 음식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흔쾌히 좋다고 하였고, 힌두교 사원에 들러서 인도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이로비로 돌아오니 대략 저녁 시간이 다 되었던 것 같다. 집 앞까지 대려다가 내려주었고, 이와 동시에 나의 마사 아미라 2박3일 사파리 투어는 끝을 맺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50불은 마사이마라 사파리 투어 하루 비용 정도 되는 금액이라고 한다. 이런 금액으로 2박3일 사파리를 알차게 즐기고 왔으니 참 기쁜 일이다. 비록 숙식은 조금 열약했지만, 좋은 분들과 함께 잊지 못할 구경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지역전문가 파견) 동아프리카 > 케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2) | 2023.05.05 |
---|---|
흙집 짓고 사는 마사이족도 핀테크 기술로 물건을 판다 (1) | 2023.04.23 |
나이로비 마트 구경으로 보는 케냐 (1) | 2023.04.17 |
구르고 굴러서 얻은 후진국 실전 여행 팁 (사례 포함) (1) | 2023.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