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문가 파견) 동아프리카/지부티

지부티 공항에서의 악몽 같은 경험

Oh Ali 2023. 3. 26. 08:42

에티오피아에서 지부티로 출장을 가기 위해 지부티행 비행기표를 구매하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외교부 해외여행 안전 홈페이지에 지부티는 도착 비자가 가능하다고 나와 있어서 이것을 믿고 도착 비자를 받으려고 생각했던 것이 모든 악몽의 발단이었다.

 

당연히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정보라서 당연히 맞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래는 지부티로 향하기 전 외교부 해외여행 안전 홈페이지 화면을 지부티행 비행기 탑승 전날에 캡처한 것이다. 해당 화면에는 "관광 또는 통과 목적 입국의 경우에는 사전에 비자를 받지 않고 항공편을 이용하여 도착하면 공항 (Ambouli Intl Airport)에서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음. (수수료 US$30)"으로 나와 있었다.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 캡쳐

나는 비자 발급 수수료인 US$ 30만 챙겨서 지부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아침 10시 발이었고, 에티오피아에서 지부티까지 1시간이면 도착하기에 지부티 유일의 국제공항인 Ambouli Intl Airport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공항은 우리나라 시골 버스터미널만 한 작은 규모였다. 보딩 브리지는 당연히 없었고, 승객들은 비행기에 연결된 이동식 계단을 통해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하였다. 

 

입국심사장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입국 심사대는 세 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간이벽으로 되어 있었다. 입국 심사장은 마치 시장통 같았다. 줄은 의미가 없었고, 먼저 심사대에 가서 여권을 내미는 사람이 먼저 통과되는 모양이었다.

지부티 공항와 입국심사대 모습

사람들이 하나둘씩 심사장을 빠져나가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도착 비자를 받겠다고 말하니, 심사대에 앉아있는 직원이 E-visa 서류와 초청장을 받아 왔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한민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한국 여권 소지자는 US$ 30으로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받았으며, 관광목적으로 방문임을 명백히 보여주기 위해 귀국 항공권과 호텔 예약 확인증을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직원은 강압적인 말투로 저기 뒤에 의자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나는 의자에서 기다렸다. 그곳에는 나 말고, 아일랜드에서 온 여자, 인도에서 온 남자, 그리고 니제르에서 온 일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나름 이 나라 저 나라 많이 다녀봤는데, 이렇게 외국인에게 무례하기 구는 공항 직원은 처음 보았다. 손가락질은 기본이고, 귀찮다는 듯한 표정과 짜증 내는 말투까지 아주 환상이었다.

이때까지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앞선 모든 사람 심사가 끝나면 이후에 절차를 거쳐 도착 비자를 주는 줄 알았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려 뒤에서 기다리고 있으란 줄 알았다. 30분이 흘렀다. 경찰이 와서 앉아있던 사람들을 공항 2층에 있는 출국 대기장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의자가 몇 개 설치되어 있었고, 지부티 출국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마치 시골 시외버스터미널 같았다.

나에게 물을 사주셨던 오만 아져씨와 내가 하루종일 기다렸던 출국장 의자

경찰은 우리에게 왜 비자를 받지 않고 왔는지 심문하듯 물었다. 나는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왔다고 토로했고 귀국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 확인서를 보여주며 관광목적임을 분명히 말하였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중 아일랜드에서 온 여성분은 E-visa도 받아서 왔는데, Invitation Letter가 없다는 이유로 비자를 줄 수 없다고 하였다.

각 사람의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여도 경찰을 듣는 시늉도 안 하였고, 거기 있는 사람들의 여권을 모두 가져갔다. 나는 그때에서야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설상가상으로 공항에는 와이파이도 없었다. 우리나라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적어도 와이파이라도 있을법한데, 국제공항임에도 와이파이가 전혀 없었다. 공항 내 통신사 부스도 없어서 유심카드를 살 수 없는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대사관과 우리 회사 지사에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항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에게 데이터 핫스팟을 잠시 연결해 줄 수 있는지 묻고 다녔다. 지금 세어보니 공항에 있는 동안 총 한 10명에게 핫스팟을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다. 당시에 오만 사람들이 공항에 많았는데, 아랍어로 말하니 너도나도 핫스팟을 연결해 주겠다고 도움을 주었고, 한 아저씨는 심지어 물도 사다 주었다. 아랍어가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될 줄은 몰랐다.

지부티에는 우리나라 공관이 없다. 옆 나라에 있는 대사관에서 지부티도 같이 담당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즉시 아는 분을 통해 대사관 영사님과 왓츠앱으로 연락이 닿았다.

영사님께 지금 처한 상황에 관해 설명하니, 지부티에는 우리나라 공관이 없어, 급한 대로 현지에서 근무 중인 국군 장교님을 공항으로 보내서 도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잠시 후 장교님께 왓츠앱으로 연락이 왔고, 공항으로 바로 오고 있으시다는 답변을 들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한편으로는 우리 회사 지사에 연락하여, 거래처를 통하여 지부티에 있는 파트너사로부터 급한 대로 초청장도 받았다. 지부티 파트너사에서도 나를 공항에서 빼주기 위해 인맥을 동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장교님께서 공항에 도착하셨으나, 보안의 이유로 공항 내부로 들어오시지는 못하셨다. 그래도 나를 구출해 주시기 위해 이곳까지 오셨다는 사실에 큰 안도가 되었다. 우리나라 명예 영사라는 현지 변호사분도 한 분 같이 오셨는데, 공항 경찰과 길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심적으로 큰 의지가 되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공항에 있는 거의 모든 경찰과 직원에게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으나, 답변은 매번 똑같았다. "Wait for chief approval"이었다. 초청장을 보여주어도, 귀국 항공권과 호텔 예약 확인증을 보여주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같이 출국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인도인 사업가 아저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10년간 사업을 하며 돌아다녀 본 나라가 20곳이 넘는다고 했다. 그가 나에게 조언하기를 "Never go to any African countries without visa. Do not guarantee they will give you arrival visa"라고 했다. 앞으로 연말까지 내 아프리카 체류에 있어 명심해야 할 말인 것 같았다.

 

돈을 주면 해결이 될 까 싶어, 나를 조사하던 경찰에게 10 달러를 주었다. 그는 재빠르게 주머니에 돈을 챙기더니 미소를 지으며 "Wait a moment'라고 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희망이 보이나 싶었다. 그러고 잠시 후 그는 또 같은 말을 하였다. "I have no authority. Wait for chief approval". 준 돈을 뺏을 수도 없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공항을 빠져나갔고, 마지막에 결국 나만 남았다. 아직도 부친 짐가방을 찾지 못하여 경찰에게 짐가방만 먼저 찾게 해달라고 했으나, 너를 다시 입국장으로 데려다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찾아가지 않은 짐은 따로 보관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 말을 믿었다. 이후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도 못 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저녁 6시가 다 되어 갔다. 아무리 애기를 해도 돌아오는 답은 "Wait for chief approval"이었다. 나는 더 이상 기다려도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것 같아 마음을 비우고 비행기표를 변경하여 밤에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알아보았다. 항공권 변경을 하고 지부티를 떠나겠다고 하니 그제야 경찰이 압수해갔던 여권을 돌려주었다. 나는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겠다고 장교님께 말씀드렸다.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기 위해 짐가방을 체크인해야 하므로 가방 찾는 곳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경찰은 나를 가방 찾는 곳으로 데려다주었고, 그곳에는 아직 찾아가지 않은 짐가방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내 가방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항공사 직원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였다. 직원은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며 가방 추적해서 에티오피아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짐가방은 언젠가 받겠거니, 여기는 아프리카니까 이런 게 흔하겠거니 생각했다.

넋이 나간 채로 출국장에서 에티오피아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물 한 병과 커피 한잔 밖에 못 먹어 매우 허기지기도 했다.

탑승이 시작되었다. 나는 줄을 섰다. 내 눈앞에 아까 나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던 경찰이 나타났다. 나는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가 하여 숨을 죽였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Chief approved. Do you want to go or stay in Djibouti?". 나는 지부티라는 나라에 정말 신물이 나고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 버리면 뭔가 지는 것  같았기에, 당당하게 비자를 받고 지부티 둘러보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경찰은 나를 데리고 다시 입국장으로 가서 비자를 받게 해주었고, 돈을 지불하고 비자를 받았다.

 

비자를 받게 된 것이 우리나라 명예 영사님이 힘을 써주셔서인지, 우리 회사 거래처 파트너사가 인맥을 동원하여 해결해 준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뭐가 됐건, 해결된 점에 감사한다.

공항에서 빠져나와 감격스러워서 찍은 안내판과 공항 출구 모습. 공항에 현재 리모델링 공사중이라고 한다.

짐가방 때문에 항공사 직원과 실랑이하고 공항을 나와보니 시간이 거의 10시가 다 되었다. 지부티 사람들 참 각박하다. 전화도 그냥은 못쓰게 해준다. 공항 직원에게 1달러를 주고 전화 한 통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호텔에 전화했는데, 기사가 이미 퇴근해서 너를 픽업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정말 화가 났다. 지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해도, sorry라고 말하고 알아서 오라고 했다. 공항에 ATM도 하나 없는지라 현지 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서 택시를 탈 수도, 인터넷이 안 되어 우버를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때 도움을 주러 오셨던 장교님이 떠올라, 혹시 공항에서 차로 숙소까지 한 번만 데려다 주실 수 없으신지 도움을 요청했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장교님께서 바로 오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늦은 시간임에도 장교님께서 직접 운전하셔서 공항까지 나와주셨고, 내 숙소까지 데려다 주셨다.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 감사한 것 같다. 군인으로서 국민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너무나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숙소에 딱 도착해서 차를 보내줄 수 없다고 말한 리셉션 직원 얼굴을 보았는데, 한대 후려 패고 싶었으나 참았다. 이렇게까지 온 거 추방당할 수는 없으니. 체크인하고 침대에 누우니 긴장이 싹 풀렸다. 우리 회사 거래처 파트너사에 전화가 왔다. "Welcome to Djibouti. I heard you are now released". "Thank you"가 수십 번 터져나왔다.

지부티에는 우리나라 교민이 5명도 살지 않는다고 한다. 일 년에 대한민국 국민 중에 지부티를 방문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도 모르겠다. 현지에 공관이 없으니 외교부 홈페이지에 최신 정보가 갱신이 안 되는 점도 이해는 간다. 나는 다만, 이번 경험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깨우쳤다. 그것은 사전에 비자 없이 절대 아프리카 그 어느 나라도 가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은 외교부 해외여행 안전 홈페이지에 정보가 수정된 것을 보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우리나라 다른 국민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항공사 직원이 CCTV를 확인 한 바, 누가 내 가방을 가지고 간 것 같다고 들었다. 항공사에서 그 사람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했으니, 우선은 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만약에 찾지 못할 경우에는 체크인 당시 짐가방 무게 1kg당 20 USD씩 쳐서 보상해준다고 한다. 턱없이 부족한 액수지만, 이거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누가 훔쳐 가서 만진 내 옷이며 속옷 다시 입고 싶지는 않다.